피자 한 판을 주문해서 친구들과 나눠 먹기 위해 여섯 조각으로 잘린 피자를 더 잘라 열두 조각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여기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피자의 총량도 달라지지 않고, 먹는 양도 달라지지 않는다. 피자 자체가 더 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분할도 이와 같은 원리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주식분할은 말 그대로 기존 주식을 일정 비율로 나누는 것이며 기업의 펀더멘털과는 무관하다. 펀더멘털과 관련해서 어떤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기업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주식분할 발표 후 주가 급등 이유
주식분할 원리를 머리로 이해한 다음 미국의 주식분할 사례를 보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2020년 7월 애플이 4대 1로 주식분할을 발표했을 때 당일 주가가 11% 이상 뛰었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선 30% 가까이 상승했다. 또한 2분기 실적 발표 후 지지부진하고 오히려 하락세이던 테슬라도 8월 주식분할 발표한 후 하루 만에 13% 상승했다.
이제 주식분할을 바라보는 시장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개인 투자자에게 심리적 변화가 일어났다. 단지 인식 차이이고 심리적인 것뿐이지만 이들은 시장을 움직이는 한 축이므로 분명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가격 부담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던 1,000달러가 넘는 주식이 갑작 250달러가 되면 '한번 사볼까' 하는 인식 변화가 일어난다. 이경우 더 넓은 범위의 리테일 투자자를 끌어들 일 수 있어서 주식의 유동성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 기관투자자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1주에 100달러든 1만 달러든 기업 가치에는 변화가 없고 투자 규모도 펀드 전체에서 특정 업종목이 차지하는 비율로 조정하기 때문에 투자 포지션이 바뀔 일도 없다.
사실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주식분할의 이유로도 주가 상승 현상이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은 단주라고 해서 1,000달러 주식 1주를 5달러, 10달러 씩의 주식 보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투자구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주식분할을 하는 이유는 급성장한 리테일 투자자의 심리를 이용해서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주식분할 하지 않는 이유
유동성도 공급하고 단기적이지만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를 낸다면 왜 다른 기업들은 주식분할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주식분할에 단점도 있어서다. 성장세인 기업 가치를 반영해 주가가 계속 올랐을 경우 오른 주가의 액면가만 따지면 아무리 비싸졌어도 장기투자를 하는 가치투자자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당 가격이 높아진 것과 주식이 고평가 된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기억하자.
높은 단가에도 주식분할을 하지 않으면 기업 가치에 중점을 두는 장기투자자를 주주로 끌어들이고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주식분할로 액면가가 낮아지면 단지 단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주식을 사는 단기성 자금이 몰리면서 기업이 선호하지 않는 투자자가 유입된다. 이는 곧 변동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분할을 선호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주식분할이 지수에 미치는 영향
주식분할은 각 시장지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애플이 4대 1로 주식분할을 해도 S&P500 지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주식분할 효과로 주가가 상승해서 시총이 올라간 만큼 지수를 차지하는 비중엔 영향이 있겠지만 주식분할 자체가 S&P 지수를 움직이는 일은 없다.
반면 다우 지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다우 지수는 구성 종목의 가격가중 방식으로 산정한 인텍스다. 즉 다우 지수에 편입된 30개 기업의 시총이 아닌 단순 주가의 평균값이 움직이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다. 따라서 주식 단가가 절대적으로 높은 기업의 주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400달러대인 애플 주식이 4대 1로 분할해 단가가 100달러대로 낮아지면 애플 주가의 움직임이 다우 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은 훨씬 떨어진다. 대신 다우 지수를 구성하는 나머지 29개 주식의 주가 변화가 인덱스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주식시장은 때로 이성적이지 않다. 아니, 대부분 이성적이지 않게 움직인다고 보는 게 맞다. 이론적 결과야 어찌 되었든 대형주의 주식분할을 호재로 인식해 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시장에서 투자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미 주식분할을 발표해서 상승 곡선에 오른 주식을 추격 매수하기에는 리스크가 지나치게 크고 기대수익률도 너무 낮다. 과거 주식분할 사례를 보면 뉴스를 공시하는 당일 시장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받고 이후로도 꽤 관심을 받으면서 주가가 상승했다. 리테일 투자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최근에는 이 상승폭이 더 커지는 추세이다.
그러나 막상 주식분할한 후에는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거나 주가가 오히려 하락한 사례도 많다. 이는 주식분할 전후의 시총 변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만약 주식 분할 이후 다우 지수에 새로 편입되는 등 별개의 호재가 작용하면 주가의 추가 상승을 기대할 수도 있다. 반면 너도나도 그것을 기대한 상태에서 주식을 매수할 경우 그 기대심리가 이미 반영된 가격으로 매수하므로 막상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면 상승폭에 제한이 있다. 이때는 차라리 다른 건전한 성장주 중 주식분할을 예상하는 주식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좋은 주식은 펀더멘털 성장과 더불어 주식분할로 유동성을 추가 공급해 주가 성장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주식분할은 일시적 유동성 공급 면에서는 호재일 수 있으나 펀더멘털이 건전하고 기업 가치가 성장할때 이뤄져야 주가가 오른다. 기업의 성장성에는 변함이 없는데 주식분할만 한다고 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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